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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 지역
서인도 제도에서는 원주민이 거의 전멸하고, 백인과 노예 흑인이 살고 있었다[22].흑인음악과 유럽음악이 융합돼 만들어진 음악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은 재즈가 아니라 쿠바의 하바넬라, 그중 스페인인 이라디에르가 작곡한 라 팔로마였다.이라디에르는 젊은 시절 수년간 쿠바에 살았으며 그곳에서 접한 하바넬라의 리듬을 자작에 도입하여 발표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하바넬라 리듬의 영향은 미국 재즈, 이탈리아 '오 솔레 미오', 터키에서 그리스까지 전해지는 실토스 리듬, 아르헨티나 탱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또한 재즈 발상지인 뉴올리언스로 이식된 흑인 노예의 대부분은 스페인령 쿠바, 프랑스령 아이티 등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남미 지역
남미는 전반적으로 선주민·백인·흑인의 3자가 섞여 있으며, 메스티소(선주민+백인)·무라트(백인+흑인)·삼보(선주민+흑인)등의 집단이 존재한다.음악도 메스티소계와 무라토계로 나뉘는데, 각각의 존재 비율에 따라 메스티소계(백인의 요소가 강한, 멕시코·아르헨티나 등)·메스티소계(선주민의 요소가 강한, 페루·볼리비아)·무라토계(브라질 해안부·카리브해 지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18세기에 룽두라는 춤음악이 성립되면서 처음엔 야비한 것으로 상·중류 계층의 비난을 받았으나, 이윽고 세련되고 도시적인 가요형식으로 바뀌었다.이 룽두리는 19세기 중반 같은 브라질에서 태어난 쇼로와 혼합돼 19세기 말엽 삼바로 발전한다.또한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바넬라 리듬의 영향으로 19세기 말에 탱고가 생겨났다.탱고 또한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으므로, 예를 들어 일본의 엔카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민중의 음악 세계화의 최초의 예라고 여겨지고 있다.가장 유명한 탱고 '라 쿤파르시타'는 365일 항상 세계 어디선가 연주된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다.

룬두도 하바넬라도 점 8분음표와 16분음표를 조합한 가볍게 튀는 리듬감을 가지며 포르투갈 혹은 스페인 음악에 아프리카적 리듬감을 가미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이 그 후 라틴 아메리카 음악의 기조가 되었다.쇼로나 탱고, 삼바, 뒤에 나타나는 쿠바 룸바 등도 이 리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카리브해 지역, 남미 지역의 음악은 라틴의 음악 등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대중음악의 역사상의 요충지에서 계속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나중에는 쿠바에서 맘보나 차차차,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칼립소, 마르티니크 섬과 세인트루시아에서 비긴, 브라질에서 보사노바, 자메이카에서 레게 등이 생겨나 세계적으로도 유행하고 있다. 또한 앞의 분류로 말하면 무라트계의 영향이 앞섰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의 미국 음악 상황
미국은 영국,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한 백인 이민자 국가이지만, 남부를 중심으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수입된 흑인 노예를 많이 거느리고 있으며, 각각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이 때문에 미국은 유럽형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식민지형 혼혈음악을 모두 국내에 보유하게 되어 독자적인 발전을 해나간다.

식민 당초부터 19세기 초기까지의 상황
식민지 시대 백인 정착민 사회의 음악 대부분은 영국에서 수입된 세속 음악과 예배용 음악이었다.18세기 중반에는 동해안 뉴잉글랜드에서 오리지널 찬송가를 만드는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미국 고유의 음악표현이 생겨났으나 예술음악은 유럽 출신들이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며 18세기 말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곡은 영국의 영국 직업작곡가가 런던의 놀이공원에서 행락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노래나 영어 발라드 오페라나 코믹 오페라에서 주로 불렸다.19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도 인기를 얻었으며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등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의 아리아가 시트뮤직 형태로 발매됐다.이러한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 미합중국 국가인 '성조기'(1814년), 독립혁명 중인 유행가 '양키 두들'(1780년경), 준미합중국 국가 '아메리카'(1831년)가 모두 영국 기원의 곡이라는 것이다.다만 미국 고유의 표현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뉴잉글랜드에서 황폐해진 찬송가 만들기는 미국 남부에 전해져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오늘날에도 불려지는 찬송가를 탄생시켰으며 로웰 매슨은 1838년 보스턴 공립학교에 음악교육을 도입했으며 찬송가를 1200곡 이상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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